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벨기에 혁명 (문단 편집) == 전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dVBs0QoXZI)]}}}|| || 포트리치의 벙어리 처녀와 벨기에 혁명 || [include(틀:위키미디어 공용,파일이름=Arrivée des volontaires liégeois à Bruxelles.jpg,너비=500,옵션=align=center)] 브뤼셀에 도착한 샤를 로지에가 이끄는 리에주 의병 1830년 바로 옆나라였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벨기에인들은 크게 고무된다. 이러한 양측의 긴장감을 반영하듯 빌럼 1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을 때 공공장소에서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월요일, 불꽃놀이 >화요일, 화려한 조명 >수요일, 혁명! >---- >[[https://be1830.be/onewebmedia/126%20la%20revolution%20belge%20de%201830%20racont%C3%A9%20par%20le%20affiches%20.pdf|출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럼 1세는 축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축제는 8월 22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찮자 오페라만 남겨두고 나머지 일정은 모두 [[https://www.rtbf.be/article/la-muette-de-portici-histoires-de-revolutions-11033475|취소되었다]].] 같은 해 8월 25일, 브뤼셀에서는 오페라 [[포르티치의 벙어리 처녀]](La muette de Portici)가 상연됐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나폴리 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는 벨기에인들의 불만을 폭발시켰고, 오페라가 끝날 무렵 자리에 앉아있는 관객은 없었다. 그리고 [[https://focusonbelgium.be/en/facts/did-dumb-girl-portici-really-set-belgian-revolution-1830|자유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우발적으로 벨기에 혁명은 시작된다. 혁명군은 빠르게 브뤼셀 지역의 정부 청사들을 점령해나갔고 당황한 빌럼 1세와 네덜란드 정부 측은 왕자 프레더릭에게 군사 지휘권을 주고 브뤼셀로 파견시킨다. 이러한 파병은 벨기에 인들의 분노를 더욱 거세게할 뿐이었고, 벨기에인들은 네덜란드로부터의 '행정적인 분리'를 요구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독립' 대신에 '자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빌럼 1세는 '브뤼셀 점령과 반란군 진압'이라는 초강경책을 선택했고 9월 말 사흘에 걸친 시가전끝에 네덜란드 군은 패퇴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10월 4일 마침내 벨기에인들이 공식적으로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파일:Daumier_-_Conference_de_Londres.png]] 같은 해 11월 4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영국]], [[7월 왕정|프랑스 왕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이 런던에 모인다. 1815년 빈 회의 당시 압도적으로 벨기에의 네덜란드 병합을 찬성했던 것과는 사뭇 달리 소수민족~~이라고 쓰고 [[폴란드]]라 읽는다~~의 독립 분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열강들이 벨기에의 독립을 지지한다. 열강들이 강력한 네덜란드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은 이 당시 해상무역을 놓고 네덜란드와 경쟁하는 상황이었으며, 프랑스/프로이센/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차지하고 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이 영 마뜩찮았던 것이다. 게다가 정작 네덜란드를 편들어줄 러시아는 10월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폴란드인들의 봉기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벨기에]]는 열강들로부터 독립을 승인받게 된다. 다소간의 협상을 거쳐 1831년 1월 벨기에의 독립과 관련한 의정서가 채택되었지만 당사자인 벨기에가 이를 거부해버린다. 이 의정서에 의하면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네덜란드-벨기에 통합 왕국 영토 중 상당수가 네덜란드에게 넘어가야 했으며 벨기에는 독립의 대가로 네덜란드의 국채 중 절반 가량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벨기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트]]를 [[레오폴드 1세]]로 국왕으로 추대한다. 레오폴드 1세의 즉위일인 7월 21일은 벨기에의 독립 기념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